
자정이 지난 시각, 호텔로 돌아가는 길을 찾는 중이다. 이 근처인 게 분명한데 젖어 있는 빽빽한 관목 숲을 헤매고 있자니 길을 찾기가 쉽지 않다. 뼛속까지 한기가 스며드는 날씨임에도 땀이 흐른다. 다리는 후들거리지만 기분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최고다.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이지만 꼭 토할 것 같다. 사실 ‘장거리 산악마라톤endurance trail running’은 여러 면에서 술 취한 토요일 밤 같은 느낌이 든다. 간과 뇌 손상을 빼면 말이다.
이제 어지간히 익숙해진 마라톤은 눈물나게 지루하다. 마라톤을 하다가 어딘가 멀리서 꼼짝 못하게 되면 편하게 히치하이크를 하거나 택시를 부르면 된다. 하지만 덤불을 헤치고, 들판을 가로지르고, 바위를 타넘고, 시내를 건너고, 절벽을 기어내리고, 낮과 밤의 모든 환경적 위험에 직면해야 하는 산악마라톤은 훨씬 흥미진진하다. 혼자만 그런 게 아니다. 360명에 이르는 참가자들(그중 300명은 단독 출전이다)이 싸늘한 5월의 아침에 오스트레일리아 유명 관광지인 루라Leura의 요크 페어몬트 리조트York Fairmont Resort 앞에 줄지어 서서 ‘노스페이스 100(The North Face 100)’의 출발을 기다린다. 시드니 남부 블루 마운틴Blue Mountain산을 통과하여 100km를 달리는 산악마라톤 대회의 시작이다.
경로를 따라 5km쯤 달리고 나면 가파른 관목 숲 사이를 한 줄로 차례차례 통과해야 하는 좁은 길이 나타난다. 너무 앞에 서면 다른 조급한 선수들에게 추월당하면서 진흙바닥에 처박힐 위험이 있는 반면, 너무 뒤에 서면 굼뜬 선수의 꽁무니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될 위험이 있다. 절벽 꼭대기까지 그렇게 앞사람 뒤에 바짝 붙어서 올라가야 한다. 다음은 짙은 초록색으로 우거진 숲속으로 300m나 뻗어 있는, 마치 사다리 같은 계단을 따라 내려간다. 그러고 나면 갑자기 산사태가 난 지역이 나타나고, 선수들은 반들반들한 바위들 위를 엎드린 채 천천히 전진한다. 뒤죽박죽으로 뒤엉켜 있는 바위들 사이로 경로 표시를 위한 막대기가 세워져 있다.
출발은 빽빽이 모여 함께 했지만 오래지 않아 경쟁 상대는 험한 지형, 그리고 자기 안의 악마만 남을 뿐이다.제1 체크포인트, 부상을 막아라!다시 관목 숲에서 멀찍이 흩어져 달리던 선수들은 첫 가파른 등반로인 ‘골든 스테어케이스Golden Staircase’에 도착한다. 관목 숲속으로 난 험한 계단을 오르다 보니 종아리에 불이라도 붙은 느낌이다. 정상에 도착하자 17km 만에 나타난 제1 체크포인트에 음료수와 간식이 마련되어 있다. 음산한 하늘 아래 다시 뛰기 시작하자 산등성이를 넘어 바람이 세차게 불어온다. 선수들은 뿔뿔이 흩어진 채 넓게 펼쳐진 자갈길을 따라 ‘내로우넥 리지Narrowneck Ridge’까지 달려 올라간다. 가파른 길을 힘겹게 올라갔지만 그만큼 가치가 있다. 반대쪽으로 계곡 너머 깎아지른 바위 절벽의 장관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너무나 아름다운 절경에 흠뻑 취해 나중에 혼자서라도 그 봉우리들 중 하나에 올라보리라 다짐한다. 하지만 계곡에서 솟아오른 비바람이 맹렬한 빗줄기를 몰아치는 순간 그런 생각은 지워버리게 된다. 자연이 가까운 거리에서 경고 사격이라도 하는 것 같다.
날씨가 나빠지자 더욱 박차를 가하여 산등성이의 가파른 경사면 아래쪽으로 돌진한다. 한걸음 한걸음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한다. 계획은 얼른 속력을 높여 다른 참가자들을 추월해서 ‘타로스 래더스Tarros Ladders’에서 기다리는 시간을 최소로 줄이자는 것이다. 타로스 래더스는 한 번에 한 명씩밖에 지나갈 수 없기 때문에 순서대로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경쟁자를 6명 정도 추월했지만 사다리 앞에는 이미 30명도 넘는 참가자들이 올라가기 위해 줄을 서 있다.

우리가 나란히 붙어 있는 바위를 향해 살을 에는 바람이 맹렬하게 불어닥친다. 참가자들은 옷을 챙겨 입고, 서로 농담을 던지며 이야기를 나누고, 먹고 마신다. 하지만 모두들 얼굴이 불만으로 차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참가자들 중에는 야생 곰이 덮친다는 둥, 나무 뱀이 배낭에 갑자기 올라타기도 한다는 둥의 이야기로 외국에서 온 참가자들이 있다. 추위 속에 너무 오래 기다리고 있다가 갑자기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게 되면 혹시 부상이라도 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밑에 의사가 있기만 바라야죠.” 누군가 한마디 거든다. “오줌이라도 눌 정도로 거시기를 세우려면 비아그라 반 알쯤은 필요할 것 같아요.”
30분쯤 후에 사다리 두 개를 내려가기 시작한다. 사다리마다 주위에 밧줄로 망을 쳐놓았기 때문에 배낭이 방해가 되지 않도록 이상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 바닥에 도착하자 속도를 높여 바위 위를 달리고 관목 숲을 지나면서, 무리로부터 떨어져나와 계획보다 뒤처진 기록을 따라잡는다. 속도가 빨라지자 바위 위를 달리는 발목과 발이 혹사를 당한다. 지난해 레이스 기권의 가장 큰 이유가 발 부상이라는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오늘은 ‘루코플래스트Leucoplast’와 ‘블리스텍스Blistex’ 패치를 발꿈치에 붙였고, 발가락마다 실리콘 보호대를 씌웠다. 발목과 발꿈치는 테이프로 감았고, 두꺼운 양말 두 켤레를 신은 후에 맨 위에 압축 양말을 신었다. 운이 좋으면 그걸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산악마라톤에서는 부상을 최소화하는 전략이 환경에 대한 대비와 체력 유지만큼이나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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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 산악마라톤의 살아 있는 전설인 딘 카나제스Dean Karnazes가 “지금까지 경험해본 가장 험난한 100km 레이스”라고 평가한 ‘노스페이스 100’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시드니 남부 블루 마운틴을 통과하여 총 4,200m에 이르는 변화무쌍한 산악지형에서 펼쳐진다. 루라Leura를 출발과 도착 지점으로 하며 레이스 도중 5개의 체크포인트를 지나게 되는데 마지막 세 개의 체크포인트에서만 지원팀이 허용된다. 릴레이 방식을 채택한 참가자들은 제3 체크포인트(54km 지점)에서 선수교체가 가능하다.
왜? 톤이나 세기처럼 100km라는 단위에는 뭔가 특별한 점이 있다. 하지만 이 레이스는 장관을 이루는 경치와 믿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도전의식을 불러일으키는 지형도 볼 만하다. 코스 표시가 잘되어 있고(필자가 놓쳤던 한 지점은 제외하고) 해당 지역 국립응급구조팀의 지원도 충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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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막히게 아름답지만 끔찍하게 고통스러운 광경. ‘노스페이스 100’은 장거리 산악마라톤 최고의 도전이다. 하지만 모든 상황에 대처할 장비를 잘 갖추고 달리고 있는 참가자.제2~4 체크포인트, 영양 공급을 챙겨라!
경주 코스에는 온갖 위험이 우리를 기다린다. 제2 체크포인트를 지나고 나자 ‘아이언포트 리지Ironpot Ridge’를 따라 롤러코스터같이 펼쳐진 지형 때문에 우리는 한 명씩 좁은 돌투성이 길을 따라 달려야 한다. 그러고 나면 끔찍한 내리막길이 나타난다. 거의 수직에 가까운 경사로를 마치 핀볼처럼 이쪽저쪽 나무에 몸을 튕기면서 지그재그로 내려온다. 다 내려오자 완전히 대조적인 광경이 펼쳐진다. 시골 벌판의 부드러운 풀밭이다. 다시 험한 자갈밭이 시작되기 전 잠깐 한숨을 돌릴 만한 구간이자, 결승선에 도착하기 전에 발밑에 마지막으로 느껴보는 풀밭이다.
제3 체크포인트는 산중 베이스캠프 같은 역할을 한다. 릴레이로 참가한 팀들은 거기서 1번 참가자의 릴레이 구간을 마치고 2번 참가자의 구간을 시작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혼자서 전 구간을 달린다. 약간의 음식을 억지로 입속에 우겨넣어보지만 위는 마치 꽉 쥔 주먹처럼 뭉쳐 있는 느낌이다. 당분을 신속하게 보충해야 할 때 필요한 젤리, 포도당 정제, 말린 과일 등을 주머니에 채워넣는다.
한동안 평탄한 관목 숲길이 이어지지만 체력을 아껴가며 ‘넬리스 갭Nellie’s Gap’을 대비한다. 경주 코스의 입체지도 상에 거의 수직으로 나타나는 350m 바위 절벽 정상까지 기어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100m쯤 올라가자 제3 체크포인트에서부터 뒤를 바짝 쫓아오던 참가자 세 명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200m 지점에 이르자 등에 멘 4kg짜리로 겁주는 사람들도 배낭이 폐를 압박하기 시작하는데, 마치 하루에 시가를 열 대쯤 피우는 사람처럼 숨이 차온다. 열 걸음을 걷기가 무섭게 숨을 몰아쉬느라 계속 멈춰서야 한다. 그러다 어둑어둑 해가 넘어가는 모습에 놀라 달리기 시작한다. 혹시 바위가 흔들리기라도 한다면 굴러오는 바위를 두 눈으로 볼 수는 있어야 할 것 같다.
다리에 고무 밴드를 감은 젊은 중국 참가자가 추월하면서 산지를 이쪽저쪽으로 누비며 달린다. 꼭대기의 좁은 길은 울퉁불퉁한 바위와 그루터기와 나무뿌리 등이 여기저기 튀어나와 있어서 발이 걸려 넘어지기 십상이다. 이제 헤드램프를 켠 채 위험을 감수하면서 속도를 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망설이고 있다. 곧이어 아스팔트길이 나오면서 ‘카툼바Katoomba’가 금방 눈에 들어온다. 갑작스럽게 문명 세계에 접근하자 약간의 문화 충격이 느껴질 지경이다. 제4 체크포인트에 이르러 달리기를 멈추고 나자, 추위와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와 온몸이 덜덜 떨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진지하게 옷차림을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다. 너무 얇은 옷이나 젖은 옷을 그대로 입고 있으면 20km가 넘는 ‘재미슨 밸리Jamison Vally’를 통과하면서 저체온증에 빠질 위험이 있다. 반면에 너무 따뜻하게 껴입으면 더위에 땀을 흘리다가 속도가 늦어질 것이다.
에코 포인트, 러닝 메이트는 필요하다!관광버스도 이미 오래전에 떠나버린 늦은 시각이 되었다. 지금 ‘에코 포인트Echo Point’를 지나 ‘자이언트 스테어웨이Giant Stairway’의 900개가 넘는 계단을 다리가 부러져라 내려가고 있다. 다리 힘을 좀 아껴보려고 마치 목발인 양 양쪽 난간에 몸을 의지해가며 내려온다. 수직으로 300m 지점에서 내려오는 다른 참가자들의 작은 불빛이 보이기는 하지만, 얼어붙을 것 같은 바람 소리에 묻혀버린 듯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다 내려와보니 새로운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경주 코스를 표시해주는 분홍색 리본들이 몽땅 사라져버린 것이다. 보조 램프를 꺼내기 위해 잠시 멈춰 선 동안 뒤를 쫓아오던 참가자가 바싹 다가온다. ‘넬리스 갭’에서 앞질러갔던 고무 밴드를 맨 남자다. 그의 이름은 카이였고, 그 역시 코스 표시가 없어져 당황하고 있었다.
곧 우리는 함께 출발한다. 이 정도 지점에 이르면 몸도 지치고 정신도 지쳐 있기 때문에 우리 둘 다 동행을 만난 게 반갑다. 앞으로 9km 정도 이어지는 내리막 경사를 빠르게 달려간 후 600m 높이에 이르는 10km 거리의 언덕을 올라가겠다는 전략을 세운다. 하지만 두 다리를 어떻게 거기까지 끌고 갈지가 깜깜할 뿐이다. 함께 달리는 참가자는 강철 같은 끈기의 소유자인지 아무렇지도 않아 보인다. 빨리 달리는 와중에도 5가지 음식을 코스 요리처럼 차례대로 먹어치운다. 그 모습만 봐도 토할 것 같다. 방귀를 뿡뿡 터뜨리는 걸로 봐서는 위장만 강한 게 아니라 훈련도 잘 받은 모양이다. 적어도 야생동물들을 멀리 쫓아버리는 데는 효과가 있다.
10km 길이의 언덕 초입에서 첫번째 낙오자를 만난다. 온몸을 옷가지와 서바이벌 담요 속에 어찌나 푹 파묻고 있는지 남자인지 여자인지조차 구별이 안 된다. “잠깐만 쉬고” 다시 출발할 거라고 웅얼거리는 목소리만 들린다. 언덕을 1km 더 올라가니 또 다른 키 큰 남자 하나가 레이스를 포기한다. 그에게 앞으로 7km를 더 가야 다음 체크포인트가 나온다고 말해준다. 혹시 전화가 연결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그의 참가 번호를 적어둔다. 하지만 곧 SES 구조대원 하나가 다가왔고, 레이스를 포기한 참가자의 위치와 상태를 알려준다. 그러느라 약간 시간이 지체되긴 했지만 오히려 그렇게라도 잠시 쉴 수 있어서 좋다. 엉덩이 근육은 비명을 내지를 지경이지만, 더 끔찍한 것은 모퉁이를 돌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어둠 속으로 끝없이 뻗어 있는 오르막길이다. 카이는 두 눈을 반짝이며 기운차게 움직인다. 고도계를 사용해 100m씩 올라갈 때마다 높이를 재면서, 힘을 내서 언덕을 빠른 걸음으로 걸어 올라간다. 금방이라도 터덜터덜 걸음이 느려질 듯도 하지만 절대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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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레이스는 5월 중순(2010년 5월 15일)에 펼쳐진다. 모기와 뱀이 출현하거나 더위로 지치지 않을 정도로 선선하면서도, 눈이 오거나 얼음이 올 정도로 춥지 않은 날씨. 제발 그래야 할 텐데. 토요일 아침 7시에 시작해서 30시간 안에 도착하면 된다.
어떻게? 참가 자격에 제한은 없으나, 모든 참가자가 반드시 의무로 정해진 장비 일체를 구비해야 한다. 레이스 도중 무작위 검사를 통해 참가자들이 안전 장비와 적당한 음식과 음료수를 구비하고 있는지 확인한다. thenorthface.com.au/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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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결승선에서는 모든 긴장이 풀어지면서 한층 즐거워진다.
2 끔찍한 고통을 그대로 보여주는 뭉치고 부어오른 종아리 근육.
3 우뚝 솟은 세 자매 봉우리가 ‘노스페이스 100’의 환상적인 배경이 되어준다. 마지막 체크포인트, 완주가 중요하다!마침내 우리는 평지에 도착한다. 마지막 체크포인트는 마치 인적이 없는 외딴 곳에 마련된 파티 뒤풀이 장소 같은 분위기다. 참가자들은 인스턴트 국수를 후루룩거리고 모닥불 주위에 모여 차를 나눠 마시며 낯선 사람들과 웃고 떠든다. 정말이지 89km나 달렸으니 잠시 쉴 만도 하지만, 나로서는 이번 레이스 중 처음으로 예상시간보다 뒤처진 상태다.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은 유혹과 싸우며 불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차가운 풀밭 위에 누워 보온 담요를 덮고 스트레칭을 한다. 몇 개월의 연습 기간 동안 엉덩이 근육과 장경인대의 스트레칭을 해왔지만, 지금 내 엉덩이는 어찌나 뻑뻑한지 석탄 몇 덩이를 넣어두면 2주 후쯤 다이아몬드로 변해서 나올 것만 같다.
10분 후 전혀 출발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카이를 보고 깜짝 놀랐다. 카이는 뜨거운 국수 한 그릇을 차지하고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다. 물론 퍼져버린 듯한 표정이다. “따라갈게요.” 카이가 말한다. 그 말만으로도 충분한 자극이 된다. 녹슨 기관차처럼 지친 몸을 힘겹게 일으켜 세우고 체크포인트를 벗어나 아스팔트 도로 위로 달려나간다. 오래지 않아 다시 관목 숲속으로 접어든다. 무엇보다 계속 ‘달리는’ 게 중요하다. 겨우겨우 코스를 완주하는 것과 레이스를 제대로 펼치는 것의 차이점이 바로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고 예상기록은 아직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 구간 역시 경주 코스 중 가장 기술적인 요령이 필요하다.
관목은 빽빽하고 길은 좁다. 기복이 심한 울퉁불퉁한 땅바닥을 계속 달리면서 바위를 타넘고 시내를 건너고 경사가 90 가 넘는 ‘오버행overhang’ 절벽 밑을 숙이고 지나가야 한다. 눈에 보이기만 한다면 분명히 굉장히 멋진 광경일 것이다. 하지만 전혀 보이지 않으니 모든 소리와 냄새, 심지어 폭포의 차가운 포말에조차 한껏 감각이 예민해진다. 그럼에도 보이지 않는 길을 달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런 길을 달리다 보면 새로운 감각적 경험을 하게 된다. 흙맛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제 어둠 속에서 빈터와 불빛을 찾고,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결승선의 표시를 찾아 헤맨다. 마침내 유럽산 전나무를 발견한다. 분명한 문명의 표시다. 하지만 아직 불빛은 보이지 않는다. 몇 백 미터를 더 달리고 나자 너무 지쳐 혹시 뭔가 잘못 본 건 아닐까 의심까지 든다. 다른 참가자 한 명을 따라잡고 나자 열쇠 구멍으로 보이는 한 줄기 빛처럼 관목 수풀 저편에 리조트의 잔디밭이 나타난다. 여기까지 와서 다른 참가자를 제치고 혼자 달려가는 것은 무례해 보일 것 같아서 대신 서로 힘을 북돋우며 함께 결승선에 들어선다. F1팀이 자랑스러워할 만한 기록이다(18:31:47의 기록으로 143등을 차지했다). 이런 지형 조건에서 이 정도 거리를 달리다 보면 참가자들은 서로 경쟁을 하기보다는 육체적 고통 및 혹독한 환경과 싸우게 된다. 식상한 말이지만, 뼛속까지 자신과의 싸움인 것이다. 우리는 하루 종일 관목 수풀과 전투를 벌였고 모두가 승자였다.
필수 장비
1 타이즈
보디 사이언스 애슬레틱 롱스Body Science Athletic Longs를 입고 참가했는데, 햇빛, 매서운 바람, 소나기 등을 만나도 전혀 더위와 추위, 축축함 등을 못 느꼈다. 피부가 쓸리거나 까지는 일도 없다. 무엇보다도 강력한 압축력 덕에 종아리 근육의 염좌와 정강이 통증을 막아준다($139.95, bsccompression.com.au).
2 신발
산악마라톤은 일반 마라톤보다 더 튼튼하고 안정성이 뛰어난 신발이 필요하다. 충격 흡수 능력과 발가락 보호 캡도 필수다. 노스페이스의 아르누바Arnuva 50 보아Boa는 그런 조건을 모두 충족시킬 뿐만 아니라, 돌려서 작동하는 보아 레이싱 시스템 덕분에 발이 신발 안쪽에서 미끄러지지 않게 단단히 고정된다($289.95, northface.com.au).
3 헤드램프
편안한 착용감과 선명함을 두루 갖춘 헤드램프는 쉽게 찾기 어렵다. 하지만 ‘펫즐 MYO RXP 프로그래머블 헤드램프(Petzl MYO RXP programmable headlamp)’는 광각조명 및 72m까지 비출 수 있는 집중 조명, 또한 도로에서 유용한 플래시 기능까지 갖추고 있다($169, spelean.com.au).
4 양말
물집이 잡히면 걸을 수 없다. 재봉선이 없는 발가락 양말인 ‘인진지 퍼포먼스 시리즈 삭스Injinji Performance Series Socks’는 걸을 때 마찰을 막아준다. 수분을 방출하기 때문에 뭉치지도 않는다. 발가락 다섯 개가 분리되어 있어 균형감과 접지력도 좋다($27.95, injinji.com.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