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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다리로 세상을 가진 남자 5인 남자, 길에 집착하여 길을 찾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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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헤쳐나가기 위해 점점 더 많은 능력과 기술이 요구되는 세상 속에서 오직 고전적인 방법이자 기본적인 방법만으로 세상을 굴복시킨 남자들이 있다. 전 세계 15군데 최악의 오지를 달려온 오지 레이서 유지성, 8,000m 봉우리 16좌를 최초로 등반한 산악인 엄홍길, 우리나라 달리기 역사의 산실인 마라토너 이봉주,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지나서 이제는 그 길을 일러주고 있는 시인 김산환, 그리고 불구의 운명을 이겨내고 현대인들에게 걸음마를 가르치기 시작한 정성열 강사가 그들이다. 과연 이 다섯 남자들에게 자신의 두 다리로 서고, 걷고, 뛰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또 먼 길을 걸어온 그들이 향하는 곳은 어디인가? 남자가 길을 걷는 이유, 걸어야 하는 이유, 걸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들어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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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지 레이서| 유지성 극한의 오지에서 인생을 발견하다 치타는 달리기 위해 태어나는 동물이 아니다. 힘도 없고, 무리도 이루지 못하는 녀석에게 달리는 것만이 유일한 생존법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오지 레이서 유지성에게 왜 그토록 죽도록 사막을, 설원을, 밀림을 달리는지를 묻는다. 마치 그렇게 밖에 살 방법이 없느냐는 듯이. 그럴 때마다 그는 대답한다. 어쩌면 자신은 세상에서 유일하게 달리기 위해 태어난 동물일지 모른다고. 이집트 사하라 사막 5회 완주, 중국 고비 사막 4회 완주, 칠레 아타카마 사막 1회 완주, 남극 레이스 2회 완주, 베트남 정글 레이스 1회 완주, 북극권의 다이아몬드 울트라 레이스 1회 완주, 아프리카 나미브 사막 레이스 1회 완주. 이것이 지난 8년간 유지성이 뛰어온 길이다. 여기에 도쿄, 베이징, 상하이 같은 국제 마라톤 참가 경력과 국내 유수의 마라톤과 울트라 마라톤까지 더하면 지난 시간이 거의 달리기로 점철되었다고 해도 모자람이 없다. 그런 그에게 세계 각국의 오지 레이서들은 2009년 ‘RTP 특별상’을 수여하며 그가 오지 레이서들 가운데에서도 두드러진 존재임을 확인시켜주었다. 이쯤 되면 그의 첫 저서가 왜 <하이 크레이지 Hi Crazy>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대회의 코스가 250~300km에 이르는 경기를 매년 거의 두 차례씩 참가하는 그를 자주 본 해외 레이서들과 스태프들이 이제 그를 보며 이렇게 인사를 한다. “하이, 크레이지 맨!”

오지 레이스는 분명 일반인들에게는 극한의 도전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마라톤이 그러하듯 일단 맛을 들이면 이 역시 여느 익스트림 스포츠가 주는 짜릿함과 쾌감, 그리고 그 이상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오지 레이스 참가자들은 자신의 의식주를 직접 챙겨야 한다. 유지성의 생명을 책임지는 장비.
미치지 않고 완성한 바이블, <하이 크레이지 > 벌써 4~5년 전의 일이다. 당시만 해도 그는 작은 중소기업에 다니면서 우리나라 사람으로서는 최초로 사막 마라톤에 참가한, 그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지난달 우연히 서점에서 <하이 크레이지>라는 여행서를 통해서 그의 이름을 다시 접하게 되었다. 책은 1년에 한 번 도전하기도 힘들다는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오지 레이스를 15회나 완주한 여정을 기록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이렇게 오지로 내몰았을까? 울릉도 트레킹 이후 제주도 올레길이 두번째 동행이다. 그 사이 그에게는 오지 레이서 외에도 많은 타이틀이 붙어 있었다. 실전 여행가, 국내 유일의 트레일 레이스 기획자, 세계 오지 레이스 한국 에이전트, 칼럼니스트, 시민기자 등. 물론 이 모든 타이틀의 근간에 그의 달리기가 있다. “울릉도에 다녀온 후 얼마 되지 않아서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오지 레이서가 되었습니다. 현실 속에서 꿈을 실현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죠.” 사실 처음 만났을 때에도 그는 꿈을 이루었다고 말했다. 당시에 잘나가는 건축가로서의 길을 접고 작은 레포츠 용품 회사에 입사한 이유에 대해서 자신이 좋아하는 브랜드이기에, 그리고 그 브랜드가 사막 레이스에 참가할 수 있도록 지원해준다는 사실에 만족감을 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것 역시 오래가지 못했단다. 몇 차례 힘들게 사막 레이스를 완주했지만, 달리기에 대한 욕구는 사라지기는커녕 점점 더 커졌기 때문이었다. “점점 더 달리고 싶다는 욕구에만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길이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달리면서도 살 수 있는 길이.”

 유지성이 처음 참가했을 때만 해도 오지 레이스 대회 운영팀조차 초라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상황 속에서 전 세계에서 참가자들은 매년 지속적으로 늘어났고, 매년 참가하면서 오지 레이스가 서서히 하나의 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지켜볼 수 있었다. “레저 스포츠가 발달한 서구에서 오지 레이스가 도전할 만한 하나의 익스트림 레포츠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무모해 보이던 것이 사람들이 선망하는 문화가 될 수 있다면, 그래서 우리나라에도 전파될 것이라면 제가 시발점이 되어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레이서로서의 길을 걸었을 때 주변에서 보낸 시선이 결코 곱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주변의 예상과 달리 지극히 냉정하게 자신의 길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8,000m 이상의 고봉까지도 돈만 내면 오를 수 있게 돼버린 오늘날, 극한의 상황이 기다리고 있는 미개척지를 오직 자신의 육체로 이겨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세계 오지 레이싱 한국 에이전트이기도 한 유지성 씨에 따르면 사막 마라톤의 경우 우리나라에서도 대회마다 20여 명 이상의 지원자들이 있을 정도로 대중화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때가 무르익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가 갈수록 일일이 지원자들의 질문을 다 대답해줄 수 없을 정도가 된 것이죠. 그래서 그들을 위한 교본을 하나 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번에 출간한 <하이 크레이지>입니다.”
삶의 에너지 충전소, 오지 레이스 유지성의 책은 극한 마라톤이나 레이스를 꿈꾸는 이들에게 ‘바이블’로 통한다. 물론 그 자신은 많은 오지 레이스 도전자들에게 정신적 지주이고, 당연히 그를 통해서 오지 레이스에 참가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오지 레이서란 타이틀 때문에 방송 매체에도 얼굴을 내밀고 있으며, 요즘은 여러 학교나 회사에서 강사 초빙 요청도 쇄도하고 있다. 이제는 굳이 악착같이 험한 길을 달리지 않아도 될 정도는 된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또 올가을에 타클라마칸 사막 레이스에 출전하려고 한다. 이제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인이 박혔다고 해야겠지요. 저에게 오지 레이스는 더 이상 극한 체험이 아니라 소풍이라 할 수 있어요. 이제는 완주를 목표로 하지 않아도 놀다 보면 결승선을 통과하게 되더군요. 요즘은 완주 후의 뒤풀이 파티가 재미있어 참가한다고 말하고 다닙니다.” 사실 오지 레이스를 꿈꾸는 사람들에겐 조금은 건방져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진짜인 듯하다. 올레길을 걸으며 내내 전 세계 오지마다의 고통스러운 경험담을 듣고자 했으나 그의 대답은 모두 이런 식으로 결말지어졌기 때문이다. “여자들도 많이 참가하는데, 힘도 좋고, 쾌활하고. 한마디로 최고죠.” “예쁜 여자들도 많아서 파티가 더욱 즐거운 것도 있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여자 참가자들에게 장난도 치고, 데이트 신청하다 퇴짜를 맞고, 농담도 하다 보면 레이스가 끝납니다.” 두 시간 가량 걸어 올레길 1코스의 절반을 내려오는 동안 유지성은 레이스에서 만난 친구들과 여자들, 파티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그리고 급기야는 농도가 짙은 질문까지 던졌다. “요즘 성생활은 어떠신가요?”
(왼쪽) 상의는 캘빈클라인, 하의는 커스텀멜로우 제품이다.
오지 레이스 대회의 코스는 평균 250km이지만 실지로는 300km에 가까운 코스로 짜여 있다. 처음 참가한 오지 레이서들은 이 코스를 매일 적게는 20km부터 많게는 70~100km씩 달려야 하기에 결승선을 통과하면 녹초가 되기 일쑤다. 그러나 유지성 같이 익숙한 사람들은 다른 듯하다. “힘들다는 느낌은 잠시뿐, 얼마 있다 보면 몸 전체가 완전히 충전된 건전지가 된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오히려 뻗쳐나는 힘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요즘 주변에서 달리기나 마라톤의 재미에 푹 빠진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생각해보니 그들의 이유도 이와 비슷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힘들지만 달리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몸이 가벼워집니다. 그때부터 제대로 된 운동 효과, 즉 제 몸에 살아갈 기운을 충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한 번 오지 마라톤을 다녀오면 어떻겠습니까?” 온몸에 주체 못할 기운이 넘칠 것이다. “오지 레이스를 하는 남편을 아내가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요. 그러나 반대랍니다. 오히려 한동안 잠잠하게 있으면 다녀오라고 등 떠밀어요. 충전 좀 하고 오라고 말이죠.”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은 다르다. 당연히 그만큼 저마다 삶의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다고도 한다. 그러나 사회가 편안하게 안내하는 길을 뿌리치고 자신만의 행복과 길을 찾아 나설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달리지 않으면 살 수 없었던 남자, 유지성은 본능을 따랐다. 두 다리가 이끄는 대로 인생의 행로를 정했다. 분명 그러다 말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는 원시 시대 남자들처럼 오직 자신의 두 다리에 의지해 자신과 가족의 삶과 행복을 만들어가고 있다. 올레길이 바닷가 코스로 접어들 즈음 그가 물었다. 올 가을에 충전하는 느낌을 알 겸 타클라마칸 사막에 함께 가지 않겠느냐고.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아직 그처럼 두 다리에 의지하고 나아갈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에디터 성열규 | 사진 최재인
|산악인| 엄홍길 산이 준 명성, 산으로 돌려보내다 은퇴하니 좀 어떠시냐고 물었다가 벼락같은 불호령을 들었다. “무슨 소리하는 겁니까? 은퇴라니요? 산과 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무엇을 하든 제 인생의 최우선은 언제나 산입니다. 지금도 열일곱번째 봉우리에 도전 중입니다.” 8,000m 봉우리가 16개 말고 또 있었던가? 또 있단다. 내려와 보니 또 다른 16좌가 기다리고 있단다. 지난달 엄홍길은 또 한번 히말라야를 다녀왔다. 스스로 17좌라고 정한 목표의 일환으로, 히말라야의 해발 4,000m에 자리한 팡보체 마을의 초등학교 준공식에 참여하기 위해서였다. 이것은 2년 전 ‘엄홍길휴먼재단’을 설립하고 그가 올랐던 16좌 아래에 16개의 초등학교를 세우기로 한 자신과의 약속의 첫 단추이기도 하다. “산을 내려온 지금 그곳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커집니다. 이제야 비로소 히말라야의 참모습을 보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한창 16좌 완등에 도전할 때만 해도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정상뿐이었다.
이 시기의 엄홍길에 대해 일부에서는 지나치게 냉혹하다는 평도 있었지만, 그것은 목표를 향해 오르는 산악인에게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제야 광활한 풍경이 보이고, 풍경 속에 피어난 수많은 나무와 꽃들이 보이고, 또 그 속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이 보이더군요. 그리고 첫 봉우리를 올랐던 1985년에 비해 자연이 많이 훼손되고 있는 것도 보게 되었으며, 히말라야 아래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궁핍하다는 것도 보게 되었습니다.” 목표를 이루게 해준 히말라야에 대한 보답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그런 진정한 모습을 이제야 발견하게 된 것에 대한 일말의 미안함일 수도 있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중요한 것은 그가 내려온 산을 다시 찾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엄홍길은 현재 네팔 지원 사업과 병행하여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정서 발달 교육에도 동참하고 있으며, 산악인 유가족들의 지원 사업에도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은 후원금이 있어야 되는 일이지만, 엄홍길은 그 모든 것이 남은 인생에서 그가 올라야 할 봉우리로 기꺼이 받아들였다. “쉽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실패할 때마다 긍정적으로 부딪혀 이겨냈으니, 이번에도 반드시 목표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사실 요즘 대중에게 너무 얼굴을 많이 비추는 것이 다소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산에서 받은 것을 산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그는 자신의 명성을 파는 중이었던 것이다. 그저 그의 새로운 도전에 박수를 보낼 뿐이다. 에디터 성열규 | 사진 성균
(오른쪽) 상의는 코모도스퀘어, 하의는 올젠 제품이다.
산이든, 인생이든 목표를 정했다면 자신이 내딛는 지금 한 걸음, 한 걸음에 집중해야 한다. 잠깐이라도 나약함과 나태함을 보인다면, 언젠가 그것은 정상 정복의 걸림돌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힘들더라도 실패와 고통을 즐길 수 있어야만 정상의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 엄홍길의 트레이드 마크인 모자. 최근 그의 트레이드 마크는 선글라스다. 오클리에서 엄홍길의 이름을 붙여준 선글라스로, 수익의 일부가 엄홍길휴먼재단의 후원금으로 적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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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에디터 : 성열규, 성예원 / 사진 : 최재인, 성균, 허원회 스타일리스트 이윤정, 캘리그래퍼 김상희 |
디자인하우스 (2010년 7월호) ⓒ Design.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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